기획자의 렌즈로 본 행사 공간
행사 공간을 만들 때 고려할 것은 많다. 프로그램 구성, 참여팀 섭외, 운영 인력, 예산까지. 그런데 막상 빈 도면과 마주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진다. 이번 프로모션 준비 과정에서 한칸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2026 한칸 프렌즈 페스티벌의 빈 도면을 보고 생각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집기부터 고르기 전에 이 행사가 어떤 행사인지, 그리고 각 공간은 무엇을 위한 자리인지 고민해야 했다.
2026 한칸 프렌즈 페스티벌은 가을 시즌 야외 마켓이다. 사흘간 약 1,000평의 부지에서 그동안 한칸과 함께해온 브랜드들이 모여 부스를 연다. 참여팀 부스와 F&B, 운영 부스가 부지 전체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부지 한가운데, 입구 정면에 100평이 비어 있다. 전체의 10분의 1에 해당하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공간이자 동선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곳이라 이 자리는 가치 있게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공간을 M.V.P(Most Valuable Place)라고 부르기로 했다.
M.V.P를 가치 있게 쓰려면 다시 한번 행사의 목적과 기획 의도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한칸은 그동안 여러 사람과 공간을 만들어왔지만, 한칸의 이름이 드러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이번 행사는 한칸이 처음으로 직접 방문객을 맞는 자리인 만큼 처음 만나는 사람도 우리를 알아가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잘 팔리는 공간 : 전환 — 경험하면 사게 된다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판매였다. 마켓같이 판매가 주목적인 행사는 배치가 곧 매출로 이어진다. 진열만 하는 구성과 직접 만지고 써보게 하는 구성은 구매 전환이 다르고, 체험 공간과 결제 공간 사이의 거리 등 다양한 요소가 결과를 바꾼다. 방문객이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써보면 판매로 이어질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이 고민을 하면서 하우스아카이브:홈디깅페어X산새 케이스를 참고했다. 산새는 부스 한쪽에 명상 공간을 마련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방문객이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제품을 직접 써본 사람은 그 물건이 자기 생활에서 어떻게 쓰일지 그려보게 된다. 살까 말까를 재던 사람이 어떻게 쓸까를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구매는 훨씬 가까워진다.


사다(Try) 배치도
2026 한칸 프렌즈 페스티벌의 참여팀 구성은 책, 공예·제품, F&B 등 다양한데 만지는 체험과 먹는 체험은 필요한 집기도 운영 방식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ZONE을 셋으로 나눴다. DP Line·Curve 테이블에 제품을 진열하고, Basic Table, Lounger, 게더링 벤치 등 다양한 집기로 시착, 시식 등 체험 존을 구성했다.
그런데 전체 배치의 관점에서는 고려할 점이 많았다. 참여팀이 많은 행사일수록 목이 좋은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의 매출 격차를 어떻게 완화할지가 배치의 과제가 된다. 배치도 빈칸에 들어갈 수 있는 팀은 3~5팀 정도였다. 몇 팀만 중앙에 세우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것이다. 게다가 행사장 전체가 이미 마켓이기 때문에, 이 한 칸까지 판매 공간으로 채우면 행사 공간에 다양성이 부족해지는 것도 문제였다. 이곳은 나머지 공간이 제 역할을 하도록 돕는 자리여야 했다.
쉬어가는 자리 : 체류 — 앉을 수 있으면 더 오래 머문다
방문객이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는 공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앉을 자리와 그늘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체류 시간이 달라지고, 체류 시간이 늘면 방문객은 더 여유를 가지고 콘텐츠를 경험하거나 구매를 결정할 수 있다.

이때 취식 공간에 가장 공을 들인 사례로 월간소반 ; 주전부리를 참고했다. 음식을 구매하는 건 잠깐이지만 먹는 시간은 훨씬 길다. 그런데도 많은 행사에서는 판매 공간에 비해 머무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은 공간의 틈을 찾았다. 자칫 지나칠 수 있는 공간마다 취식 공간으로 활용했고, 거기에 어울리는 집기를 골랐다. 덕분에 방문객들은 행사장 어디에서든 자신만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고, 공간은 훨씬 여유로워졌다.


쉬다(Rest) 배치도
2026 한칸 프렌즈 페스티벌은 참여팀이 많은 데다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이기 때문에 이런 휴식 공간을 설계하고 싶었다. 쉬고 싶은 마음도 두 가지라고 봤다. 조용히 쉬고 싶은 사람이 있고, 쉬면서도 마켓 분위기는 계속 느끼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래서 가든 테이블 세트와 Basic Roof로 그늘을 만들고 외부와 약간 분리된 느낌을 주는 완전 휴식 공간과 Lounger와 키지 스툴 세트, 키지 스탠딩 테이블로 구성해 F&B 부스와 인접시킨 개방형 마켓뷰 라운지 둘로 나눴다. 쉬면서 다음에 어디로 갈지 살피게 되는 공간, 방문객이 재관람 동선을 스스로 짜게 만드는 것이 이 안의 핵심이었다.

휴게 공간이 야외 행사에 꼭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지만, 문제는 위치였다. 쉴 자리는 한곳에 마련할 수도 있고 월간 소반의 사례처럼 곳곳에 나눌 수도 있다. 모으면 접근성이 떨어지고 피크타임에는 붐비기 때문에, 부지의 크기와 방문객 규모에 따라 상황이 다를 것이다. 이 경우, 쉬는 공간은 중앙에 뭉쳐 있기보다 구역마다 분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중앙 공간은 더 의미 있게 쓰여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정리되었다.
함께 만드는 공간 : 경험 — 프로그램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한칸이 여는 첫 행사이니 의미 있는 경험과 기록이 남았으면 했다. 프로그램은 '한 칸 채우기 대회'로 정했다. 이번 기획의 핵심인 가장 중요한 한 칸을 채우는 경험을 방문객이 직접 해보게 하는 것이다.

한칸은 나와 친해지는 시간 Look at me, Anam Change Maker, 온가족 놀이터에서 야외 참여형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다. 세 행사 모두 Walls가 사용되었는데, 주로 메모지를 붙이거나 벽면에 직접 작업하는 등 그 자리에서 바로 참여하고 결과를 남기는 프로그램이다. 참여의 문턱이 낮고 운영도 간단하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야외 공간은 사방으로 열려 있어 프로그램 참여자와 일반 관람객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참여 프로그램은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다. 활동 재료를 나눠주고 안내할 수 있는 지점, 앉아서 작업할 테이블, 결과물이 쌓일 공간까지. 프로그램은 있는데 각 공간이 역할에 맞게 나뉘어 있지 않으면 운영하는 쪽도, 참여하는 쪽도 혼란스럽다.


하다(Play) 배치도
세 행사에서 Walls가 맡았던 역할은 그대로 가져와 전시 존이자 포토 존으로 활용했다. 여기에 작업 공간은 Basic Roof와 Basic Table로 구성해 앉아서 작업할 수 있게 하고, 참여자 동선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X-booth 2를 두어 프로그램 안내와 더불어 종이, 펜, 스티커 등 활동 재료를 직접 나눠주기로 했다. 프로그램 동선과 일반 관람 동선을 분리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간이 입구 정면에 있는 게 맞을까. 의미 있는 공간이지만 결과물이 쌓여야 완성되는 구조라면, 첫날 방문객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텅 빈 벽일 것이다. 그래서 빈칸이 위치한 곳을 위한 최고의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 눈에 읽히는 공간 : 동선 — 처음이 전체를 보여준다
여러 아이디어 거치며 이 자리의 조건이 하나씩 걸러졌다. 입구 바로 앞, 행사장 한가운데, 그리고 한칸의 첫 번째 행사. 그렇다면 여기서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바로 환대와 함께 우리를 소개하는 일이었다. 거북목 도서전의 '엉금엉금 존'이 먼저 떠올랐다. 브랜드가 태어난 순간부터 3년간의 기록을 모아 아카이브 전시로 구성한 공간이다. 이 행사를 열기까지 브랜드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방문객에게 보여주었다. 다음으로 디스이즈텍스트 논픽션 북페어 사례를 참고했다. 행사장 입구 바로 앞에 각 부스의 대표작을 모은 전시대를 놓았다. 협소한 공간에 관람 시간이 제한된 조건에서 방문객이 이 행사에 무엇을 보게 될지 파악할 수 있도록 동선을 설계한 것이다.


두 실내 사례에서 가져온 것은 집기가 아니라 기능이었다. '공간의 목차', 입장 전에 행사 전체를 한 번에 파악하게 하는 기능이다. 규모도 조건도 다른 야외 부지에서 그 기능을 수행하려면 어떤 집기를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야외 행사 사례 중 수문장을 살펴봤다. 실내에서 벽이나 선반이 하던 일을 야외에서는 Walls가 대신할 수 있었다.


보다(Watch) 배치도
2026 한칸 프렌즈 페스티벌은 앞선 두 사례보다 공간 규모가 큰 만큼 방문객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가장 처음 발을 들이는 공간에 순서가 있는 서사를 담는 것이 중요했다.
Zone 1 — 한칸 아카이브 전시. Walls를 ㄴ자로 배치해 길을 여는 형태로 세우고, 그 위에 배너와 현수막을 걸어 한칸을 소개한다. 히스토리를 풀다 보면 자연스럽게 협업했던 팀들이 등장하고, 그 팀들이 곧 오늘의 참여팀이기 때문에 Zone 2로 넘어가는 맥락이 만들어진다.
Zone 2 — 참여팀 큐레이션 전시. DP Line·Curve 테이블 위에 참여팀의 대표 제품을 하나씩 전시하고, 옆에 브랜드명과 부스 번호를 매칭한 태그를 단다. 어디로 가야 그 부스를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이다. X-booth 2는 이 구역의 안내 부스 역할을 한다.
동선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유도하는 것이다. 배치가 바뀌면 사람의 움직임이 바뀐다. Walls는 양면을 사용해서 앞면에는 아카이브 전시를, 뒷면에는 Zone 2로 이어지는 협업 히스토리를 담아 순서가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공간에 맞는 정답을 함께 채워봐요
어느 공간이든 그 의도가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자리가 하나씩 있다.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는지가 행사 전체의 인상을 결정한다. 앞서 우리가 M.V.P(Most Valuable Place)라고 부른 공간이다. 이번 행사 목적에도 맞고 빈칸의 위치에도 맞는 답, M.V.P는 마지막 '보다(Watch)'였다.
선택되지 않은 세 개의 아이디어도 정답이 될 수 있다. 행사 목적이나 빈칸의 위치가 달랐다면 사다, 쉬다, 하다도 저마다 옳은 답이 되었을 것이다. 한칸도 여느 기획자들처럼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거나 처음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획 의도와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나면, 그 우선순위를 공간에 어떻게 표현할지가 다음 과제로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출을 우선했다면 그것이 배치에서 읽혀야 하고, 경험을 우선했다면 그것이 공간에서 보여야 한다. 그럴 때 그 공간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좋은 공간'이 된다.
한칸은 빈 도면 앞에서 막막해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기획자의 눈높이에서 좋은 공간을 만들고자 직접 행사를 기획하고 그 과정을 공개했다. 앞으로도 앞서 언급했던 여러 사례처럼 좋은 결과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당신의 행사에도 가장 중요한 한 칸이 있을 것이다. 당신의 행사라면, 그 한 칸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아직 정하지 못했다면, 한칸이 곁에서 함께 고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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