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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환경을 생각하며 만들어가는 디자인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면서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행사에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방콕디자인위크 ‘살만한 풍경’ 세 번째 주제는 ‘환경과 공존’인데요. 일상생활에서 늘 마주하는 시장에서 사용한 비닐, 플라스틱을 활용한 작품, 실천 캠페인 그리고 행사 부스 등 방콕디자인위크에서 고민하고 실천한 포인트를 만나봅니다.

by 노성일
2024.05.22

동남아시아로 출장을 자주 다니면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기후 위기 이슈가 아직 일상 깊숙이 자리 잡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많이 받고 있었다. 태국도 마찬가지였다. 조그만 노점에서 음식을 사더라도 비닐 팩에 두세 겹씩 담아주는 것이 보편적일 정도로 플라스틱과 비닐 소비가 특히 많은 곳이기도 하고, 신흥공업국으로서 다양한 시도와 발전의 분위기가 가득한 탓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닥쳐온 기후 변화 앞에서 손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태국에서는, 특히 디자인 위크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을까? 

꽃시장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로 종이꽃을 피우다

자연환경을 생각하는 움직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Petals & Pages(‘꽃잎과 종이’로 번역할 수 있겠다.)’다. 방콕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을 꼽자면, 나는 방콕 꽃시장을 말하고 싶다. 꽃시장을 거대하게 덮은 아케이드의 2층은 평소 상인들이 점심을 먹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2층 복도에 거대한 설치 작품이 걸렸다. 

아케이드 2층에 설치된 작품 Petals & Pages ⓒSungil Noh

이 작품은 Capyper 사와 왈라일락대학교 건축 디자인과에서 협업해 방콕 꽃 시장 안에서 버려진 폐기물들(Petals)을 수거해 세척한 뒤, 종이와 식물 재료만 분류해 채반에 걸러 종이(Pages)로 재탄생시킨 작업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종이를 ‘종이꽃 만들기 키트'로 제작해 워크숍을 진행하거나 편집숍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제품화했다. 

(왼쪽) 꽃시장 내의 폐기물 쓰레기통, (오른쪽) 재탄생한 꽃 작품 ⓒSungil Noh

방콕 꽃시장에 들어서면, 활기찬 상인들이 판매하는 화려한 꽃과 손질하고 난 후 바닥과 쓰레기통에 버려진 식물의 잔해를 동시에 보게 된다. 시장 곳곳에 놓인 쓰레기 바구니를 눈에 담으며 안내 표지판을 따라 시장 중앙에 위치한 계단으로 2층 전시 공간으로 이동하면,해 마치 꽃이 시들었다가 다시 피는 것처럼 쓰레기에서 종이꽃 작품으로 변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전체 과정을 현장감있게 직접 마주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설득되는 프로젝트였다. 이런 프로젝트를 보면 오리지널리티와 컨텍스트가 어우러질 때의 시너지를 다시 한번 느낀다. 만약 이 기획이 꽃시장이 아닌 평범한 전시장이었다면, 꽃이 아닌 일상의 폐지로 만들어졌다면 이 정도의 임팩트는 없었을 것이다. 장소와 맥락, 진정성과 아이디어가 만나 ‘꽃이 다시 꽃이 된다’는 좋은 기획으로 완성된 것 같다.

꽃시장 풍경 ⓒSungil Noh

Petals & Pages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패널 ⓒSungil Noh

플라스틱 다량 사용 문제는 태국도 심각하다 

태국이 환경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편은 아니지만, 기후 위기 시대의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춰 발빠르게 시도하는 창작자들이 있다. 그 중심에 A thing that is pieces Studio가 있다. 이들은 “당신이 버리기 전에는 그 무엇도 쓰레기가 아니다."라는 모토로 태국 각지의 기업, 교육기관과 워크숍, 친환경 제품 생산 등으로 협업해 플라스틱 사용량 줄이기와 재활용 방안을 끊임없이 말하는 곳이다. 한국의 노플라스틱선데이 No Plastic Sunday가 떠오르는 스튜디오였다. 이곳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재생 플라스틱으로 장난감 만들기 워크숍이 진행하고 있었다. 

재활용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관련 워크숍, 협업을 활발히 진행하는 A thing that is pieces 스튜디오 ⓒSungil Noh

이 스튜디오가 자리 잡은 차이나타운 근처의 송왓 Songwat 지역은 예로부터 물길을 따라 한약재 창고가 많이 있던 지역이었는데, 운송 방식이 현대적으로 변하면서 빠져나간 한약재상 자리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문구와 생활용품 도매상이 몰리기 시작했다. 또 거리는 소위 힙한 골목으로 인식되어 최근 수많은 카페가 생겼다. 형형색색의 수많은 플라스틱이 거래되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많이 소비되는 지역의 골목이기 때문에 재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을 조달하기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생각됐다.

송왓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문구 도매상점 ⓒSungil Noh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을 선보이는 A thing that is pieces 스튜디오의 쇼케이스 ⓒSungil Noh

건축용 비계 구조물로 임시 설치, 재사용하는 부스 

상설 전시가 아닌 특별 전시는 짧은 기간 동안 화려하게 선보이고 곧 사라진다. 전시를 준비한 사람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들인 노력, 정성을 전시 작품뿐 아니라 공간과 세심한 동선에서 발견할 때면 많은 감동을 하기도 하지만, 금방 사라질 전시에서 발생할 폐기물은 어디로 가며, 얼마나 나올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특히, 최근 제품 디자인계에서는 환경 이슈에 맞춰 제품의 재료 선택에서 폐기까지 생애주기 전반을 고려한 생산을 강조하고 있다. 제품의 소비자 혹은 행사의 방문객은 대체로 행사 기획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환경 이슈에서는 기획자나 생산자가 먼저 나서서 소비자가 볼 수 없는 부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BKKDW 본부에서 세운 설치물이 매우 반가웠다. 사용 후 해체해 재사용이 편리한 건축용 철골 비계 구조로 되어 있어서, 전시가 끝난 뒤의 풍경도 살만한 도시에 어울리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관의 플라스틱, 목재, 스티로폼으로 만든 구조물이 행사가 끝나 폐기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축용 비계를 이용한 공간 구성 ⓒSungil Noh

건축용 비계를 활용해 벤치, 테이블 등 가구로 만들기도 했다. ⓒSungil Noh

환경 이슈를 앞장서서 생각하는 태국의 MZ 세대

BKKDW에 출품된 여러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제품을 만들 때, 이후 발생할 환경 영향까지 다각도로 고려해 소재를 선택하는 섬세한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이런 경향이 긍정적으로 보였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빠른 경제성장 과정에 들어간 태국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생산 이후의 결과를 간과하지 않는 태도였으며, 두 번째는 BKKDW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주요 연령대인 20대들이 이러한 행사에서 영감을 받아 앞으로 만들어갈 사회에서는 환경을 고려한 더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전시 ‘Regenerative Commodities’에서는 식물 폐기물로 만든 화병, PVC 파이프 자투리로 만든 가구 등을 선보였다. ⓒSungil Noh

환경을 생각하는 태국 20대들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 또 있었다. BKKDW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먼저 TCDC로 향할 것이다. 바로 그렇게 가장 많은 사람이 들를 TCDC 안내 부스 앞에 뽑기 기계가 흥미롭게 서있었다. 어떻게 뽑는지를 부스에 물어봤더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분이 방법을 안내해 주었다. 모바일폰에서 해당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주어진 활동을 하면 뽑기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다. 

이 어플리케이션은 쭐라롱콘대학교에서 개발한 ‘Carbon Footprint in Daily life’로, 방콕 디자인 위크와 연계해 방콕 시내의 여러 프로그램을 방문하면서 걸음 수, 먹은 음식, 대중교통 이동 거리 등을 기록하면 탄소발자국 지수가 계산되어, 목표 달성 시 뽑기권을 주는 구조였다. 뽑기에는 방콕의 오래된 상점 전면을 그린 마그넷이 들어있었다. 행사의 본부 격인 TCDC에서 시작해 하루 종일 즐겁게 프로그램을 관람하고, 저녁에 TCDC로 다시 돌아와 야시장의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보고, 그렇게 모은 탄소발자국 목표로 굿즈를 얻는다는 기획. 환경 이슈를 행사 전체 프로그램과 연결한 대학생들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일상의 탄소발자국’ 기록 앱과 굿즈를 얻는 방법을 소개하는 장면 ⓒSungil N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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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KDW를 짧은 시간 바쁘게 돌아다니며 발가락에는 물집이 잡혔지만, 마음은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나흘 동안 하루 평균 1만 6천 보! 탄소발자국 목표를 높게 달성한 수치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굿즈 뽑기를 하러 부스에 방문했을 때는 이미 물량이 모두 소진되어 받을 수 없었다. 행사 종료일 훨씬 이전에 마감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효과적인 이벤트였다는 생각에 아쉬움의 눈물을 기쁘게 닦았다.  

동남아를 연구하는 기획자로 방콕에 여러 번 방문했지만, 이번 방문만큼 생생하게 도시를 경험한 것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으로서는 전혀 가보지 않았을 구석까지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생생한 발자취와 그 안에 담긴 고민을 엿볼 기회를 방콕디자인위크가 주었기 때문이다. 행사의 주제를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거칠게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방콕이 가진 다양성을 기반한 개성이라고 생각해 매력 있게 다가왔다. 재치와 여유를 놓치지 않는 태국인들의 삶의 태도처럼 ‘살만한 풍경’을 여과 없이 드러내어 준 방콕디자인위크를 통해 비일상적인 행사와 일상에서 펼쳐낼 기획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노성일
에디터 노성일

출판사 소장각을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동남아시아 시각 문화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