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 홀리데이 마켓 《4321-MARKET》
2020년 시작한 4321-MARKET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스위스 ECAL (École cantonale d'art de Lausanne) 동문으로 구성된 4321KR이 기획한 홀리데이 마켓이다. 매년 다른 테마 아래 독립 디자이너들이 아이디어부터 제작까지 참여한 독창적인 제품들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는 장이며, 2025년은 주한스위스대사관에서 12월 13일 하루 동안 마켓을 열었다.
2025년의 테마는 “FOUND CHARM” 으로, 스위스 스포츠웨어 브랜드 On으로부터 남은 원단과 LightSpray™ 공정에서 나오는 TPU 부산물을 제공받아, 남겨진 재료들의 아름다움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19팀, 총 23명의 디자이너는 각기 다른 시각으로 소재를 재해석하여 보관함, 조명, 파리채, 모빌, 파우치 등 다양한 오브제를 만들어냈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을 캔버스로
2023년에도 한국-스위스 수교 6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서 4321-MARKET을 열었다. 하루만 하는 행사이다 보니 집기 제작이나 구매보다는 폐기물 배출과 보관 부담이 없는 집기 렌탈을 선택했다. 한국 디자이너가 스위스 기념품을 만들고, 스위스 디자이너가 한국 기념품을 만드는 “SOUVENIR MARKET” 이 테마였던 이때에는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연상시키는 지붕 구조가 있는 집기를 꼭 쓰고 싶었고, 그때 찾은 것이 X-booth 1이다.
실내 마켓이라 지붕 천이 해를 가려 주거나 비를 막아주는 등의 기능은 하지 않지만, 연말 축제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목재 프레임으로 제작된 X-booth 1은 스위스 건축가가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사관 건물(스위스 한옥)의 목재 구조들과 잘 어울렸다. 자연스러운 목재 느낌에 모던함을 더하기 위해 지붕 천은 커스텀하여 쓰기로 했고, 그래픽을 프린트한 폴리에스터 소재의 흰색 메쉬 원단을 사용했다. 다만, 프린트할 수 있는 메쉬 원단의 규격이 정해져 있어서 두 개의 원단 조각을 이어붙여 한 개의 지붕 천을 만들 수 있었다.
2025년에는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집기 배치와 지붕 천에 변화를 주고, 마당 공간에도 마르쉐 롱보드를 활용하여 박신영 작가가 찍은 제품 사진을 전시했다. 대사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인상적인 마당 공간과 건물의 목재 외벽, 이 전경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게 역시 목재로 만든 집기를 선택했고, 리듬감 있는 배치로 넓은 마당 공간을 채우고자 했다. 이날의 변수는 비가 오는 날씨였다. 다행히 Marche Long Board도 야외에서 사용이 가능한 것이었고, 제품 사진도 물에 젖지 않는 소재에 프린트하여 안심할 수 있었다. 비가 온 덕분에 마당 바닥에 사진들이 거울처럼 반사되어 더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냈다.

높은 층고에 크지 않은 면적의 실내 마켓 공간에서는 X-booth 1을 5개씩 2열로 중앙에 배치하여 방문객들이 회전 동선으로 제품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2023년에는 집기들을 벽 쪽에 붙여 중앙에 통로 공간을 만들었었는데, 현장 사진을 찍을 때 집기가 한 덩어리로 보이는 것이 이미지로서 더 임팩트가 있고, 제품을 보는 방문객도 자연스럽게 한 바퀴를 돌면 되니 효율적인 동선이라서 중앙 배치로 변경했다.
캐드 도면으로 미리 집기 배치 계획을 짜 놓고, 원하는 설치 및 철거 일정과 배치도를 한칸에 전달하여 행사 하루 전날 집기 설치가 이루어졌다. 배치도상의 공간감과 현장에서의 감각이 다른 경우가 있어서 집기 설치가 완료된 뒤, 실제 방문객들이 들어오면 어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지, 어떻게 이동할지 고민하며 세세한 위치 조정을 진행했다. X-booth 1과 Marche Long Board, 두 집기의 간단한 구조 덕분에 설치와 철거가 빠르게 이루어져서 짧은 일정의 이벤트에 적합하였다.

작은 차이로 큰 효과를 줄 수 있는 지붕 천 커스텀
앞에서 말한 대로 2023년에도 X-booth 1의 지붕 천을 매쉬 원단으로 커스텀하여 사용했었는데, 2025년에는 On이라는 브랜드의 느낌을 살리면서 지난 마켓과는 다른 인상을 주기 위해 아웃도어 제품에 많이 쓰는 기능성 원단을 지붕 천으로 사용했다. On에서 제공받은 자투리 원단으로 지붕 천을 만들고 싶었지만, 랜덤하게 보내진 원단이다 보니 적합한 소재가 없었다. 실내 공간 조도가 많이 높지 않기에 지붕 천이 짙은 색이거나 두꺼우면 천장 조명이 가려져 제품이 잘 보이지 않거나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동대문에서 원단을 구매해서 사용했다. 매우 가볍고 빛 투과도 잘 되는 흰색 립스탑 원단을 X-booth 1크기에 맞게 재단하고 On의 로고와 같은 색인 검은색 시트지로 글자를 붙였다.
지붕 천을 모두 씌우고 주름이나 각도 등 작은 부분까지 신경 써 조정하니 원하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같은 흰색 지붕 천이라도 소재와 어떤 그래픽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전체 공간의 분위기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 좋은 베이스가 있으니 원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여러 시도는 재미있는 과정이었고, 이 방식이 4321-MARKET 고유의 연출로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작은 규모의 팀은 효율적인 예산 운영과 노동력 투입을 무시할 수 없는데, 이런 경우 작은 차이로 큰 효과를 내는 집기 일부 커스텀이 적합한 해결책 같다. 게다가 지붕 천은 여러 개를 제작해도 무게가 가벼워 운반이나 설치 부담이 적다. 마켓 당일, 방문객들과 디자이너들도 집기를 칭찬하며 어떻게 제작했는지 궁금해하였고,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는 분들과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했다.

함께여서 가능했던 《4321-MARKET》
아름다운 주한스위스대사관 공간과 어울리는지, 연말 축제 분위기를 내는지, 마켓 테마를 반영했는지, 커스텀 여지가 있는지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 집기 연출이었지만, 이와 더불어 빠른 설치 및 철거 또한 행사 운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글에 다 쓸 수는 없었지만 결국 4321-MARKET은 제품을 판매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제품 디스플레이, 결제, 포장, 재고 관리, 고객 응대 등 신경 쓸 것들이 정말 많은데, 집기 준비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 좀 더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집기 렌탈이 비용과 폐기물 부담을 줄이는 수단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중요한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보태주는 수단이기도 한 것 같다.
사진: 박신영, 김예진, Benoît T. Eb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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